어, 제목 그대로 몇 년 전에 아빠한테 커밍아웃 했다가 아빠 응급실에서 숨 쉰 채로 발견되심(리얼트루실화스토리)
우선 커밍아웃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 몇 해전에 나는 정체화를 마치고, 급작스럽게 가정의 달 기념을 맞이해서 5월 달에 엄마한테 먼저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얘기를 해버렸다. 원래 AMY, ABBY와 사이가 좋았어서 걍 충동적으로 커밍아웃 갈겼다. 지금은 그러한 접근 방식에 크게 후회한다. 좀 더 신중히 말할 걸
결과는?! 안좋았다~ 무슨 분노표출도 없고 그냥 엄마 소리도 안 내고 우심...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거의 한 달간 밤마다 눈물 흘리신 거 같았다 하...한순간에 나는 여자를 울린 레즈비언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우리 엄마인...ㅠㅠㅠㅠㅠ
그리고 엄마가 나한테 말을 안 걸기 시작했다. 엄마나 아빠나 원래 기분이 안좋거나 뭔가 불편하면 입을 꾹꾹 닫는 편인데, 바로 침묵쇼 돌입. 몇 주 간 엄마와의 대화 단절 기간이 지속되다가, 슬슬 풀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렇다고 내가 성소수라는 사실 자체에 마음의 문을 연 건 아니고, 그냥 자식새끼니까 계속 말을 안 할 수도 없다? 이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걍 이 상황이 미칠 거 같았다. 되도록이면 밖에 오래 있다가 집에 들어오고 싶었는데 매일 계속 밖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자니, 밖에서 밥 사먹고 카페에 있는 것도 다 돈이라...그런데 집 가면 개불편하고.
물론, 스스로가 초래한 불행일 수도 있지만? 그런식으로 따지면 이렇게 태어난 것도 내 잘못? 아니 내가 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ㅋㅋㅋㅋㅋㅋㅋ이제 와서 보니 진짜 뭔 내가 엄마한테 "엄마....나 사실 사람을 죽였어" 이렇게 얘기해도 저 때 커밍아웃 반응이랑 똑같을 듯. 역시 레즈비언=살인마?ㄷㄷ
내가 심리적인 고통이 상당하던 시점에 참 안타깝게도 그다지 의지하고 기댈만한 친구도 없었다. 일단, 나도 내 힘듦에 대해서 얘기하길 좀 불편해하는 성향이었고 또, 당시에 뭔가 내 괴로움을 적극적으로 호소하기에는 친한 친구들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위태위태하던 시점에 나는 드디어 "그래도 바로 레즈비언인 나를 내쫓지 않고 같이 살게 냅둬줘서 감사하다~"하고 셀프가스라이팅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넹글 돌면서 어, 그래 그냥 아빠한테도 말해야지 ㅇㅇ. 어차피 (정서적으로) 처맞을 거 한 방에 다 맞자. 그리고 이건 나한테 중대한 일인데 엄마만 고통받게 할 수 없지~하고 아빠한테 바로 얘기 갈겼다.
아빠는 그 당시에는 눈물을 안흘렸는데, 이후에 2-3번 정도 더 나를 붙잡고 진지하게 성소수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뭐 내가 안심할만한 얘기는 하나도 없고, 그냥 동성애는 정상은 아니지 않냐~?>>>그래도 아빠는 XX이를 사랑해>>>그래도 그건 아니다....이런식으로 걍 아무 말 안하는 것보다 더 미치게 하는 말만 들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 엄마랑 아빠 둘 다 나의 커밍아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아빠가 더 충격을 받고 괴로워했다. 그때쯤 아빠는 퇴근 후 잦은 음주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 오늘도 아빠는 술 먹고 오는구나~하고 엄마랑 나는 집에서 자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12시~1시쯤에 엄마한테 전화 한 통이 왔다.
바로 응급실에 아빠가 있다는 소식~
엄마가 바로 병원에 가자고 하는데 나는 통화내용은 못 들었으니까 정확한 상황은 모르고, 응급실에 있는 아빠를 보러 간다?는 사실만 알고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아빠가 음독 살자를 했으면 어떡하지....'하고 잠시 불안해하다가 걍 엄마한테 먼 일이냐고 물어봤다. 엄마 왈 "취해서 차에 살짝 치이고, 아무튼 다리 좀 다쳤대" 이 말을 듣고 정말 안심이 되고, 아빠가 한심스럽고 짜증이 막 치솟았다. 아니 나이가 몇 살인데 술 먹고 다치냐고... 후
아무튼 나는 살짝 짜증이 난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마침 응급실 면회는 보호자 한 명씩 가능해서 엄마가 먼저 면회를 하고 이후에 내가 응급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단 아빠 상태는 응급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긴 했는데 전체적인 상처가 큰 건 아니었다. 근데 응급실에서도 아직 술이 덜 깬 아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도 심하게 안다쳐서 다행이다, 어디서 누구랑 마셨냐 이런 걸 물어보니까 이태원에서 술을 마셨다는 거다. 걍 거기서 술 마시고 집 가려는 길에 차에 살짝 치인 것이다.
오잉?? 아빠가 굳이 이태원까지 가서 술을 마신적이 없는데 완죠니 엥 싶었다.
이태원 어디서 마셨냐고 물어보니까, 트랜스젠더바에서 마셨다고 했다.
트랜스젠더바?
아빠 설명에 의하면 딸이 동성애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속 답답하고 마음이 불편한데, 친구나 동료한테는 차마 털어놓지를 못하고 얘기할 곳을 찾아 트젠바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사실이 약간 웃기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감정이 격앙된 상태여서 아빠 얘기를 듣는데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아 참고로, 계속 아빠는 취기가 있는 상태에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는 상황이었다. 아, 무슨 죽을 뻔하다 겨우 살아난 재질로 응급실 한편에서 딸이랑 아빠가 눈물 죽죽 흘리고 있었다.
암튼 아빠가 트젠바에서 트젠언니들한테 딸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가족인 나조차도 이런 반응인데 사회적 편견과 반응이 어떨지, 자기가 잘못 키워서 그런 건 아닌지 걱정과 불안 같은 걸 호소한 모양이다. (그럼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자기부터 인정을 해주고 좀 아무렇지 않게 굴어주면 되는 건데 그렇게는 못하시는;;)
그래도 나름 트젠언니들한테는 아빠가 딸을 걱정한다는게 크게 와닿았는지, 혹은 언니들 본인의 가족관계를 떠올리게 했는지 정확한 속내는 나야 모르지만, 아빠 얘기를 듣고 트젠언니들도 울고 아빠도 울었다고 했다.....어버버
거기다 트젠언니들이 우리 아빠 처지가 이해가 된다, 안타깝다, 기운내라는 이유로 술값을 대폭 깎아줬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아 진짜 뭐랄까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연대라는 걸까나?
응 그렇게 응급실 소동은 나한텐 약간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나의 정체성에 대한 엄마, 아빠의 불편한 감정은 계속 지속되었다 ㅎㅎ ㅜㅜ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나아졌다. 정말 나한텐 시간밖에 답이 없는 문제다....아무튼 글을 쓰다 보니, 언젠가 트젠바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취업하면 가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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